그리고 반성을 한다. 구석구석 스며든 나태함과 변명의 하루하루를 반성한다.
'착한 영웅' 신드롬
http://news.joins.com/article/aid/2009/06/28/3408787.html?cloc=nnc
출처: http://www.indigoground.net frontpage에서 발췌편집.
인디고 서원을 수식하는 말은 여러가지라지만,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서점'이라는 타이틀이야말로 인디고 서원의 '본질'을 잘 설명해준다고 생각한다. 희망제작소에서 주관하는 희망을 찾는 사람들의 모임인 Social Design School의 강연으로 인디고 서원의 '아람샘' 허아람 대표를 만나게 되었다.
항상 그렇지만 짧은 식견과 경험으로 인디고 서원을 평가/재단하는 것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이 될 것 같으니 언론에 소개된 내용 몇 개를 추려보았다.
1. 아이들 죽이는 입시경쟁 - 경향신문 기사: 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811031506145&code=900314
2. 한겨례 신문 기사: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320739.html
그 분의 인문학적 소양과 철학의 깊이에 감동을 받았고, 그간 선생님과 그 제자들의 도전과 성취가 인상적이었다.
19년간 빠짐없이 일주일에 한 번씩 독서토론회를 만들어온 선생님의 꾸준함이야말로 내가 배워야할 덕목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고, 사람에 대한 사랑과 신뢰는 무척 감동적이었다. 어떤 매혹적인 향수보다 이 분에게서 풍기는 책과 사람 냄새가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이 강연을 들으며 많은 도전과 질문들이 머리와 가슴을 헤집기 시작했다.
인디고 아이들의 자양분인 선생님의 열정은 무엇인가? 그 원동력은 무엇인가?
나의 가슴 어딘가에도 숨어있을 것 같은 이뜨거운 마음의 정체는 무엇인가?
인문학의 가장 낮은 곳에 흐르는 근원적 에너지의 정체를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인생의 계획을 세워야할 청소년기에 책을 통해 세계의 스승들과 이런 문제와 고민을 이야기하고, 인터넷을 따라 찾아간 망망대해와 같은 세계라는 무대 위에서 꿈을 키워가는 그들에게 우리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의 후배들에게 우리는 왜 삶의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해줄 수 없었을까! '치열'하게 '치열'하게 살았다던 7~80년대 선배들은 이제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우리 아이들에게 강요되는 교육폭력을 방관하고 오늘도 인감의 존엄성을 지워나가는 아이들의 잔인한 하루하루를 방치하고 있는 것인가. 아름답고 치열한 청소년기를 보내지 못한 우리는 나이 서른에 다시 세상과 싸움을 시작한다.
순수와 정의. 그리고 강철 같은 선의지조차도 이 복잡다난한 사회 속에서는 소리없는 아우성이 될 뿐이라는 그 누구의 분석은 틀릴 수 밖에 없다. 지금 부산 남천동 어느 골목길 위에 인디고 서원이 존재하며, 그 속에서 빛나는 희망의 싹들이 커가고 있으니까.
서른의 언덕을 넘어선 나에게도 희망은 있다.
>> 인디고서원: http://www.indigoground.net
deejay.
Shoe drop 첫날 찾아간 타운십 안의 고아원의 아이들. 사진작가 에스더가 찍어준 사진인데, 나는 이 사진이 참 마음에 든다.
오래 전부터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살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막상 아이들 앞에 섰을때 그들이 병에 걸렸거나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두려워하면 어떻하나. 막상 그들 앞에 섰을때 그들을 돕고 싶은 연민이 생기지 않으면 어찌하나. 막상 그 순간에 내가 무기력하게 느껴지면 어떻게 하나. 참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나는 스무살이 되는 해부터 꿈을 꾸기 시작했다.
내가 부르던 삶의 노래, 희망의 노래처럼 사람이 행복한 세상을 꿈꾸었고, 한비야 씨처럼 세계를 여행하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기를 꿈꾸기도 했고, 언젠가 한비야 씨가 월드비전 구호팀장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 분의 삶이 참으로 부럽기만 했다.
나이 서른.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남아프리카공화국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누군가를 돕기 위해 나의 28번째 나라로 향하고 있었다. '서른이 되면 내가 꼭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을꺼야'라고 친구에게 읊조리던 것이 나이 스물여섯 때였다. 드디어 나이 서른. 스스로 선언한 그 순간이 다가오자 나의 심장은 점점 위축되고 걱정으로 두근거리지조차 못하고 있었다.
슈드랍의 첫 날인 11월 11일은 나의 생일이었다.
Shoe drop에 참가한 여러나라 사람들과의 첫 저녁식사 시간에 나를 소개하면서 문득 깨달았다.
"오늘이 정말 다시 태어나는 날이구나."라고.
다음 날, 우리는 타운십의 아이들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 곳에서 내가 맞닥뜨리게된 것은 기쁨도 희열도 성취감도 연민도 동정심, 그 무엇도 아니었다.
오로지 이 아이들이 바로 현실이며, 여기서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이 아이들을 도울 수 있어 행복해지는 것은 나라는 것을.
도대체 무엇을 하고 살아야할지 모르겠다며 인생상담을 하는 친구들에게 이 말을 꼭 한다.
"자신이 무엇을 바라는지 알고 싶다면 조용히 자신 속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들어보라고."
분명히 오래 전 언제부턴가 당신은 알고 있다. 핑계와 변명 그리고 하루하루의 유희와 쾌락으로 그 목소리를 무시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진심으로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는.
여전히, 거창한 세계평화의 꿈은 어떻게 이루어야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방법은 알게 된 것 같다.
내 안의 선한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살아가는 것. 하루살이가 급하고 버겨운 서울의 우리와 흙밭 위를 뛰노는 그 아이들의 하루를 이어주는 것. 그 멀기만 한 간격을 메워가는 것 말이다. 그리고, 아이들을 품 안에 안을 때 몸 구석구석 퍼지던 그 행복한 생명의 기운을 잊지 않는 것이다.
I am a happy man.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Deejay.
Be the change you want to see in the world. (Ghan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