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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떠나는 나리타와 돌아오는 나리타.


2009년이 어느덧 17일 지났다.

그 사이에는 첫 조카 창일이의 생일, 동욱형이 생일, Jimmy의 생일이 있었고, 지금 힐탑 웨딩홀에서는 영호형과 자영이가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을 올리고 있을 것이다.

 

지금 나리타 공항에는 석양이 지고 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9시가 되야 해가 지기 시작했었고, LA의 밤은 6시가 되면 어느덧 시작되었다. 남아메리카 그리고 북아메리카의 그 거대한 도시는 비록 인간의 위대한 도시이지만, 여전히 자연의 빛을 안고 있었다. 내가 사는 서울이라는 인공의 빛으로 밤낮을 잊은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자연의 위대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난 17일은 자연이 주는 숭고한 감동을 다시금 일깨워준 시간이었다. 마른 땅을 뒹구는 개처럼 쏟아지는 햇살 아래 춤추는 나의 영혼과 쏟아지는 이구아수 폭포 앞에 어린이가 되어 버린 청춘에게 지난 몇 일은 서른하나를 자축하는 멋진 소풍이었다.

 

신발 박스를 실은 낡은 밴에 우리의 남루한 몸과 영혼을 맡긴채 덜컹덜컹 비포장 도로 위를 나아가는 것은 수백 년 전 예수회 신부님들의 열정과 비할 바는 아니었으리라.

우리가 찾은 아르헨티나 Misiones의 정글 속 마을들, Comedor 그리고  커뮤니티 센터 의 많은 아이들. 그 아이들의 모습에는 내가 어릴 적 보았던 흙 길 위를 맨발로 걷던 순박한 인도네시아 사람들, 남아공의 발랄한 아이들과 캄보디아 에서 만난 아이들의 모습은 볼 수 있었으나, 나의 영혼은 그들의 모습에 비루하게 비춰졌다. 도시의 탁한 공기에 또 다시 빛을 잃었음에 다시 고개를 떨굴 수 밖에 없었다.

 

이제 다시 도시 속으로 돌아간다.

도시로 돌아가는 일은 늘상 두렵다.

남아메리카에서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과 영광스런 자연의 축복을 기억하며 다시 용기를 내어본다. 

숨막히는 도시의 생활에 병든 우리에게 늘 주기만을 원하는 아름다운 대자연의 축복과 우리의 사랑을 기다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 우리의 마음과 마음 사이에 열린 그 사랑의 터널을 다시 열기 위해 더디지만 부지런히 그 옛날 Misiones의 정글 나무를 하나하나 베어나가던 예수회 신부들의 열정으로 무엇인가로 빼곡하게 차버린 일상의 장애물을 하나하나 지워나가야하지 않을까.

 

지금 나리타 공항의 작은 인공의 빛들 뒤에는 위대한 자연의 빛이 그 빛을 다하고 있다.

 

이제는 정말 집으로 돌아갈 시간.

지난 일년간 우리가 했던 그 노력이 단지 신발 한 켤레를 주기 위한 일이 아니었음을, 어렵게 시작한 이번 여정을 통해 나의 영혼을 다시금 밝히시고 사랑과 감사로 채워주셨음을 마지막 순간에야 눈물로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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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a happy man

 

Shoe drop 첫날 찾아간 타운십 안의 고아원의 아이들. 
사진작가 에스더가 찍어준 사진인데, 나는 이 사진이 참 마음에 든다.

오래 전부터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살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막상 아이들 앞에 섰을때 그들이 병에 걸렸거나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두려워하면 어떻하나. 막상 그들 앞에 섰을때 그들을 돕고 싶은 연민이 생기지 않으면 어찌하나. 막상 그 순간에 내가 무기력하게 느껴지면 어떻게 하나. 참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나는 스무살이 되는 해부터 꿈을 꾸기 시작했다. 
내가 부르던 삶의 노래, 희망의 노래처럼 사람이 행복한 세상을 꿈꾸었고, 한비야 씨처럼 세계를 여행하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기를 꿈꾸기도 했고, 언젠가 한비야 씨가 월드비전 구호팀장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 분의 삶이 참으로 부럽기만 했다.

나이 서른.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남아프리카공화국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누군가를 돕기 위해 나의 28번째 나라로 향하고 있었다. '서른이 되면 내가 꼭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을꺼야'라고 친구에게 읊조리던 것이 나이 스물여섯 때였다. 드디어 나이 서른. 스스로 선언한 그 순간이 다가오자 나의 심장은 점점 위축되고 걱정으로 두근거리지조차 못하고 있었다.

슈드랍의 첫 날인 11월 11일은 나의 생일이었다.
Shoe drop에 참가한 여러나라 사람들과의 첫 저녁식사 시간에 나를 소개하면서 문득 깨달았다.
 "오늘이 정말 다시 태어나는 날이구나."라고.

다음 날, 우리는 타운십의 아이들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 곳에서 내가 맞닥뜨리게된 것은 기쁨도 희열도 성취감도 연민도 동정심, 그 무엇도 아니었다.
오로지 이 아이들이 바로 현실이며, 여기서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이 아이들을 도울 수 있어 행복해지는 것은 나라는 것을.

도대체 무엇을 하고 살아야할지 모르겠다며 인생상담을 하는 친구들에게 이 말을 꼭 한다.
"자신이 무엇을 바라는지 알고 싶다면 조용히 자신 속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들어보라고."
분명히 오래 전 언제부턴가 당신은 알고 있다. 핑계와 변명 그리고 하루하루의 유희와 쾌락으로 그 목소리를 무시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진심으로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는.

여전히, 거창한 세계평화의 꿈은 어떻게 이루어야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방법은 알게 된 것 같다.
내 안의 선한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살아가는 것. 하루살이가 급하고 버겨운 서울의 우리와 흙밭 위를 뛰노는 그 아이들의 하루를 이어주는 것. 그 멀기만 한 간격을 메워가는 것 말이다. 그리고, 아이들을 품 안에 안을 때 몸 구석구석 퍼지던 그 행복한 생명의 기운을 잊지 않는 것이다.

I am a happy man.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Deej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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