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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20 결과에 대한 단상

결과에 대한 단상

1주일만에 의식이 돌아온 우석이. 한 사람의 목숨이 얼마나 귀중한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최신 배트맨 시리즈 <다크 나이츠>에서 조커는 예정되지 않은 다수의 죽음과 예정되어 있는 한명의 죽음. 그것이 가지고 오는 사회적 동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이런 '사회적' 동요와 무관하게 죽음이라는 문제가 '개인적'으로 얼마나 크게 다가오는지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되었다.

두달 동안 들뜬 마음으로 기다리던 제천 국제음악영화제 출발 2일전. 우석이의 사고 소식을 들었다. 갑작스러운 생소한 그 소식은 가깝지만 생소하기만 한 일본에서 날아들었다.

늦은 밤 찾아뵌 어머님의 애통하고 절박한 얼굴을 마주했다.

다음 날 아침 비행기로 일본으로 날아갔다.

하네다에서 신주쿠로. 신주쿠에서 게이오나가야마역으로. 도보로 일본의과대학 구급센터로.

위생모와 위생복을 입고 깨끗하게 손을 씻고 들어선 구급센터 구석의 작은 방에서 의사 선생님의 친절한 설명. 일본 의사선생님들과 간호사들은 참 친절했다. 통역을 통해 듣는 한마디 한마디.

기능 모를 기계들을 달고 있는 친구는 침상에 누웠있지만 그곳에 내가 아는 우석이는 없다.

오열하는 어머님과 어쩔줄 모르는 젊은 통역과 나는 말 없이 서있을 수 밖에 없다.

한 시간 두 시간. 기다림에 익숙치 않은 우리는 점점 초조해져만 간다.
어쩌면 나는 어떤 결과도 받아들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삼십 년을 살아오면서 어쨌든 우리는 많은 사고와 죽음을 거쳐왔으니까. 허나 우리는 그와 그녀의 끈질긴 사투는 아랑곳하지 않고, 단문으로 들려오는 고지서 류의 통지만 익숙하다. 生과 死. 뿌옇게 다가오는 안개길 뒤의 절대적 갈림길에서 좌회전도 우회전도 가능하겠지만 그 무소음의 정적 안에서 우리는 참을성이 없다. 텅 빈 기다림. 나의 텅 빈 시간 속에서 우석이는 관념으로 존재하지만, 과연 우석이는 어디를 향하고 있었을까. 상상하건데 자꾸 틀어지는 핸들을 애써 돌려놓으려고 하지 않았을까. 생각컨데 쉽고 편하게 흐르는 인생의 줄기를 따라가다보면 정작 원치 않았던 곳으로 왔던 때가 많았으니까. 너는 아무도 없는 갈림길에서 그렇게 애를 쓰고 있지 않았을까.

하루가 갔다. 이틀이 갔다.
더디게 회복되어가는 친구를 눕히고 대합실에서 자는 새우잠 통에 허리는 뻐근하고 속은 더부룩하다. 배도 고프다. 졸리기도 하고. 빈 시간 속에 나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파이브스타스토리를 정독한다. 나는 정적을 견딜만큼 강하지 않다. 강하지 않고 심지가 굳지도 않다.

삼일이 갔다. 사일이 갔다.
조금씩 회복되어가고 있다지만 아직 넘지 않은 고비들이 너무도 많다. 결과. 결과. 결과. 온통 결과에 사로잡혀 살아온 삶의 방식은 무익하다. 아니 무효하다. 나는 우석이에게 미안할만큼 결과에 목마르고 있다. 나는 나에게 실망을 한다. 형제와 같은 친구의 소리없는 투쟁에 나의 의식은 오로지 목이 말라 해갈을 찾기 시작한다.

오일.
우석이를 응급실 병상에 놓고 돌아서야하는 것이 너무나도 힘겹다. 이것이 마지막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볼쌍 사납게 부어오른 뒷목과 생기 없는 혓바닥 목구멍에서 빨아내고 있는 피가래. 왼팔 오른팔에 달린 여러 전자장치와 주사바늘. 이 모든 것이 낯설고 힘겹다. 비 내리는 신주쿠 역 부근 프론토에서 카페모카와 롤케익을 삼키며 옆자리에 앉은 젊음들과 유쾌함. 이야기. 친구를 그리워하는 나의 마음이 자꾸 반사된다.

비현실에 갇혀버린 오일.
나는 잊고 지내던 나를 다시 만난다. 친구를 다시 만나고. 생과 사의 갈림길에 대해 생각한다. 기다림에 초조해하는 못난 나를 만난다. 나는 울었다. 친구로 인해 발견한 못난 나의 모습에 웃었다.

우석이가 깨어나면 꼭 전해주라고 당부한 나의 쪽지.
아마 지금쯤이면 우석이도 그 쪽지를 보았겠지. 금메달을 그려놓은 쪽지를. 웰컴 백. 웰컴 백.

08. 8. 21. Deej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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